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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ON

<광복절 71주년 특집> 우리지역 독립운동가

안녕하세요? 애국심 가득, 으뜸이에요~

다음 주 월요일은 8월 15일, 광복절이에요.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절,

문자 그대로 '민족의 빛(光)을 되찾은(復)’ 뜻깊은 날이지요.

 

국권회복을 위해 몸 바친 독립운동가 분들과 그들을 후원한 국민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어쩌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답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발전과 사회문화적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친 독립운동가들!!

우리 청주에만도 약 90명에 달하는 애국지사들이 활동을 하셨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광복절 특집, 우리 지역 독립운동가를 알아보는 시간!!

그럼 으뜸이와 함께 한분 한분~~ 만나 보실까요?  

 

 

두둥!! 민족 지도자의 느낌 물씬 풍기는 이 분은 누구실까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로 시작,

최시형, 최제우에 이어 동학(이후 천도교로 변경)의 3대 교주이자,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지내셨던 분입니다.

누군지 아시겠죠? 바로 의암 '손병희' 선생님입니다. 

 

 

청주시 북이면 금암리엔,

손병희 선생께서 나고 자란 생가(유허지)가 보존되어 있는데요~

 

 

손병희 선생님은 항일 투쟁을 중시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백성들의 교육과 문화 활동을 중시했던 '애국계몽적' 성격의 독립운동가셨어요.

천도교의 교세 확장과 함께

출판사 창립, 보성학교, 동덕학교 설립 등 교육 계몽 활동에 힘쓰셨답니다.

 

 

 

붉은 철쭉꽃이 새초롬히 피어난 손병희 선생님의 생가입니다.

 

'유허지'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만 있을 뿐

문화재나 유물은 남아있지 않은 장소를 뜻하는데요~ 

옛 청원군에서는 손병희 선생의 애국 애족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1979년 이 곳을 "충청북도기념물 제30호"로 지정하고,

동상과 생가, 유물전시관을 마련한 거라고 하네요.

 

 

5월 5일 어린이날의 창시자인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손병희 선생님의 사위이기도 하죠~

손병희 선생님의 동생들도, 자녀들도, 사위도 독립운동을 하거나 후원하는 등

말 그대로 독립운동가(家) 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의 주도 세력이었던 손병희 선생님.

전국으로 독립만세가 울려퍼진 그 날,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는데요,

병보석으로 1년 8개월만에 그리운 집으로 돌아왔건만,

감옥에서 겪은 고초가 너무 컸던지라 석방 후 불과 3년만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하지만 손병희 선생님께서 보여준 민족 독립 의지와 교육에의 의지는

한국 근현대사 발전에 중요한 줄기를 이룸과 동시에

비폭력 평화 시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자, 그럼 두번째로 소개해드릴 분!!

 

 

책을 읽고 계신 모습을 보아하니, 역사가? 작가?의 느낌이 물씬 나는데요~

너무 어렵다고요? 그럼 힌트를 하나 드릴게요~

이 분이 남긴 명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네네~ 맞습니다. 논설가이자 역사학자, 무장투쟁을 주장한 열혈 혁명가이기도 한

단재 '신채호' 선생님입니다.  

 

 

도로 양 옆으로 자랑스럽게 펄럭이는 태극기!!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사당이 있는, "고드미 마을" 입구입니다.

 

 

멀리서 보니, 푸르른 잔디와 녹음이 한층 진하게 보이는데요~

단재 선생님의 기운이 묻어난 곳이어서 그런지, 그 푸르름 마저도 강직하게 느껴집니다.

 

신채호 선생님은 충남 대전에서 출생을 하셨는데요,

3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고향인 이 곳 귀래리 '고드미 마을'로 이사를 했고,

18세에 성균관에 입교할 때까지 고드미 마을에서 성장하셨답니다.

22세 되던 1901년에도 이 곳으로 돌아와 열심히 계몽 운동을 전개하셨다고 하네요~

 

 

신채호 선생님의 업적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우리 민족에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불어넣은

'민족주의 역사관'의 정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역사학계는 중국 중심의 존화주의,

혹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식민주의 사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요,

신채호 선생님은 그러한 학설들에서 과감히 벗어나!!

민족주의에 입각한 자주적이고 실증적인 우리만의 역사관을 창출하셨답니다.

 

 

 

 

신채호 선생님의 부부 동상이에요~

부인이신 박자혜 여사 또한 강직하고 고결한 성품의 여성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죠.  

연해주와 만주 등 국외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신채호 선생님을 대신해

집안을 이끌어가는 가장이자,

남편의 독립 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든든한 후원자셨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소개해드릴 분, 

이 분은 청주에서 유명한 성씨 본가 중 하나인 "청주 한 씨"과 관련있는 분이에요~

 

 

앗!! 한 손엔 총을 들고 있고, 누군가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듯한 모습!!  

강직한 무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요~

구한말 일본군이 이 분을 만날까봐 벌벌~~ 떨었다고 하죠?

일본군에겐 호환마마,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던 전설의 의병장!! 한봉수 의병장입니다. 

 

청주에서 출생한 한봉수 의병장은

일제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7년부터 의병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총 쏘기를 무척 잘해, 17세 무렵에는 지역의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타고난 전투 능력 덕분일까요?

의병으로 활동했던 4년 6개월동안 충북에서 있었던 33번의 전투에서

다 한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승리를 거두었을 정도로 

의병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쌓으셨답니다.

 

사진 속 장소는 내수읍 학평리의 "한봉수 의병장님 유적지"에요.

 

 

언덕 꼭대기 양지 바른 곳엔 의병장님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어요.

 

신출귀몰한 전투 능력과 유격 전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한봉수 의병장님이 우리 지역 독립운동가로서 의미가 큰 이유!! 

바로 3.1 운동 당시 청주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신 분이기 때문인데요~

무장 투쟁 중심의 의병 활동으로 시작,

3.1 운동을 계기로 비폭력 만세 운동을 이끈 독립투사가 되셨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흔치 않은 이력을 보유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 곳엔 무슨 사연이 있길래 2개의 비석이 아래, 위로 자리해 있는 것일까요?

이 곳은 진천군 문백리, 한봉수 항일의거비가 세워진 곳입니다.

 

계단 꼭대기 포부도 당당하게 서 있는 비석이 의병장의 항일의거비,

그 아래, 꽤 많이 훼손된 듯한 비석은 바로 일본 헌병 '시마자키'의 비석이라고 하는데요,

시마자키가 누구냐?

바로 1908년 6월, 한봉수 의병장에게 사살 당한 일본 장교라고 합니다.

 

당시 조선 통감부가 사살당한 '시마자키'를 추모하고자 비석을 세웠고,

해방 이후 1977년엔 이 곳 문백면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한봉수 의병장을 기리는 항일의거비를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원래 계단 위에 있었던 시마자키 비석을 깨뜨려버리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자,

(너무 단단해서 깨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 비석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항일의거비를 꼭대기에 세웠다고 합니다.

 

국내 유일무이,

일제에 저항한 의병장의 비석과 

그가 사살한 일본군의 비석이 함께 있는,

항일 투쟁 역사의 현장입니다.

 

지금까지 청주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세 분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이분들 외에도 애국애족의 성지로 불리는 청주엔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들이 정말 많이 계셨는데요~

권병덕, 신석구, 신홍식 선생님을 비롯해 구한말 국권회복운동 의병에 참가한

정춘서, 조용근 선생님도 계시고요, 청주를 중심으로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분으로는

김재갑, 김재형, 김호상, 박준규, 조동식 선생님 등이 계시답니다.

물론 해외에서 임시정부와 비밀결사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정말 많답니다.

 

 

암울한 시절,

조국 독립을 위해 제 한몸도 모자라 자신의 재산과 재능, 미래까지 바친 독립운동가들.

 

이 분들의 희생 정신을 두고두고 기리고 기억하는 것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 후손들의 의무이자 책임인데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억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1년에 단 한번, 8월 15일 광복절만이라도

태극기를 달고 잠시나마 이 분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그 넋을 위로하는건 어떨까요?

일제 강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오늘날의 대한민국,

모두 이 분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죠.

  

지금까지 애국심 충만한 으뜸이였습니다.